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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악의 평범화에 갇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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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작성일24-08-30 14:49 조회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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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평범화에 갇힌 사회
출처: 광남일보 2024년 08월 28일 '악의 평범화에 갇힌 사회', 톡톡브레인심리발달연구소 박병훈 대표님


 

[아침세평] 모기의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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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날씨만큼 맹렬한 악의 기운을 느끼며 살아가는 일이 필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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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이 보인 모습은 가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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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우기는 공직자를 보면서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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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모습을 한 채 우리 삶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악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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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양산하는 체제를 지닌 사회 속에서는 악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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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주어지면 사람은 ‘누구든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악을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일들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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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와 채상병 사건을 겪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가해자들이나 책임자들의 자기합리화나 변명을 들을 때면 인간성에 회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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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아히이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육백만명의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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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친위대원이었던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수용소로 보낸 후 학살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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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력과 언어적 감수성을 동원해 아이히만을 세기의 악인 혹은 세기의 괴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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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판을 통해 드러난 그의 모습은 평범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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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오히려 법질서를 존중하고 직장 내에서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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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이상주의자로 여기며 유대인들이 가졌던 시온주의에도 동질감을 느낀 사람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어떠한 범행 동기도 발견할 수 없었다.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호도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신봉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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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유대인에 대한 근거없는 증오심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욕구의 결핍이나 인간의 경향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후 그들의 존재 흔적 마저도 깨끗이 지워버린 세기의 악마답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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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재판 과정에서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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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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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서 악이 고유한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의 실체는 평범성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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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히만은 유대인의 추방과 강제 이주, 학살과 관련한 상부의 명령을 오로지 자신의 직무로만 받아들여 로봇처럼 따를 뿐이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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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을 일으키는 조건은 세 가지이다. 인간의 사유, 말하기, 판단의 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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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한다. 사유를 통해 자신의 행동에 제동을 걸고 현상에 머무는 자아를 향해 의문을 제기하고 숙고해야 한다. 사유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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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가 자신과의 대화라면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판단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검열하고 숙고해 보는 정신활동이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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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해 확장된 사고는 판단의 독단성을 제거하고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다른 사람들의 스키마에 자신을 비춰보는 일은 인간의 불완전한 판단을 보완해 준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곳의 어려움을 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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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든 세계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실존적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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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속성 가운데 한 가지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산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수혜를 받는 개별적 존재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삶을 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관계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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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의 이야기처럼 고유한 자기됨을 간직하면서 타인의 실존을 방해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가을은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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