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외부활동
연구소소식 > 연구소 외부활동
[광남일보]새로운 문을 너머선 세상 덧글 0 | 조회 252 | 2020-07-02 17:50:22
관리자  


새로운 문을 너머 선 세상

톡톡 브레인 심리발달 연구소 박병훈 대표

우리는 요즘 경계 지점에 서있다. 앞날의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산업혁명 시대 이후로 계속되어 온 성장 일변도 사고는 끝이 난 것처럼 보인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발달을 성장과 감퇴를 포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찬찬히 살펴보면 사람들은 발달해 감에 따라 성장과 성숙을 하지만 어떤 정점에 서면 퇴화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퇴보나 감소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는 노화하고 기억력도 저하된다. 반면에 지혜가 늘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욕심과 오만함 때문에 퇴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인류는 팽창과 확장만을 성장이라 여기며 모든 힘을 다해 가속 페달을 밟아 왔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고 후퇴하는 것도 역성장이라고 포장까지 하고 있지 않는가.

한계에 직면했을 때는 잠시 숨을 고르고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칙은 송두리째 버려야 한다. 익숙한 것들과의 과감한 결별이 필요하다. 얼마 전 한 중학교를 방문하였다. 심리평가를 실시하기 위해서였다. 건물 입구부터 경계가 삼엄했다. 발열 체크를 하고 방문자 명부에 등록을 했다. 이어 담당 교사의 방으로 들어가자 다시 발열 체크를 하고 또다시 명부에 이름을 등록했다. 교실에 입장해서는 더욱 남 가해졌다. 여섯 시간 동안이나 마스크를 쓰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말하기도 고통스러웠지만 아이들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답답했다. 매우 낯설었다. 아니 매우 낯익게 됐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통찰이 생겼다.

우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상대의 아픔이나 고통, 어려움에 공감하지 않는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들어라'라고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에게 그만 이야기하고 경청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지 모른다. 마스크는 그 상징으로 보인다.

둘째,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를 바꾸라고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 여유로움의 상징이자 풍요의 상징인 여행을 묶어 버렸다. 손발을 묶어 버렸다. 자연을 파괴한 범행도구인 손과 발을 묶어버렸다. 그리고 실존적인 존재로서의 자신에게 집중해보라고 권유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해체시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넘어 새로운 믿음으로 도도하게 다가오는 문을 열라는 것이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처럼 낯설지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대담하게 열어젖히라고 한다.

셋째, 새삼 인간의 삶은 조화와 균형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장 일변ㄷ고 생활양식은 자연을 파괴시켰다. 진화는 환경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다. 진화가 반드시 진보나 발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환경은 다시 인간의 사고나 행동의 기권이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자연이 조화와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겠는가.

성장에 대한 맹신주의는 사람들을 화려한 겉모양에 도취하게 만들었다. 끝없는 경쟁을 삶의 목적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쉼이 없었다. 쉼은 숙고하는 시간을 만든다. 이때 우리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성창할 수 있게 된다. 성찰 속에서 타인이 만든 기준에 따라 장단을 맞추며 살아온 삶이 엿보인다. 이제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한다.

넷째,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자유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의 한 가지이다. 당장에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 소극적 자유이다.

자유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 인생 경험이 많은 어름들이 말한다. 코로나 사태 같은 일을 평생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단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 지향적인 자유가 필요하다. 우리의 눈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화려한 외양, 끝없는 경쟁, 더 큰 집, 남들로부터 주어진 꼭두각시 같은 삶인가? 조용하고 여유로운 성찰 속에서 내가 설계한 삶에 도전해나갈 것인가? 인간의 성취는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 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시대의 영구에는 길거리에 학문이 몰입한 독학 지식인들이 넘쳐났다. 그 사람들에게서 피스톤과 증기기관이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자유롭게 집중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혁신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져 갔다. 지금 자유스럽지 못한 모든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안성맞춤인 좋은 기회가 아닌가?

 
닉네임 비밀번호 코드입력